“투표해봤자 뭐가 달라지는데?”
이 말을 처음 들었던 건 20대 초반, 친구들과 치킨집에서였어요. 선거를 며칠 앞두고 있었고, 정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죠.
당시 저는 막 대학에 들어와 사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였고,
나름대로 뉴스도 자주 보고 공약도 살펴보며 누굴 뽑을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친구는 말하더군요. “나는 정치인들 믿은 적 없어. 그 사람 그 사람, 다 똑같아.”

1. 처음으로 느낀 괴리 – 말과 현실의 간극
사실 저도 완전히 부정하진 못했어요. 고등학생 때 뉴스에서 봤던 ‘청년 공약’이라는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무상교육, 청년 일자리, 주거지원, 스타트업 지원… 말은 근사했지만, 제 주변에 실제로 혜택을 받은 친구는 거의 없었어요.
게다가 매 선거마다 비슷한 공약들이 반복됐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조용해졌죠. 이런 과정을 몇 번 겪고 나면, 정치에 대해 자연스럽게 냉소적으로 변해갑니다. "우리를 위한 정치는 없다"는 감정은 개인의 무관심에서가 아니라, 반복된 실망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때 알게 됐어요.
2. 청년 정치가 청년을 닮지 못할 때
최근 몇 년간 '청년 정치'가 강조되고 있긴 해요. 20~30대 정치인들이 당선되고, 청년 대변인도 활동하고.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얼마나 닮았는지는 별개의 문제예요.
실제로 국회에 있는 청년 정치인들 중 상당수는 정치권에서 오래 일했거나, 정당의 추천으로 비례대표로 들어간 경우가 많아요. 물론 그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생활 속 문제를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죠.
예를 들어, 주거 불안 이야기를 할 때 전월세 전쟁을 실제로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정책을 만든다는 건, 아무리 선의로 접근한다 해도 현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3.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유난’이라는 시선
한 번은 학교에서 소규모 세미나 형식으로 지역 정책 토론회를 연 적이 있어요. 당시 발표 준비를 하면서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정책을 분석하고 비교하던 중, 친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와, 너 이런 것도 다 챙겨보냐? 약간 정치 덕후 같다.”
물론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이 말이 참 이상하게 남았어요. 정치에 관심을 가진 게 이상한 일이 된다는 분위기. 친구들 사이에서도, 뉴스 이야기를 꺼내면 금세 대화가 끊기거나 분위기가 가라앉았어요. 일종의 금기처럼 느껴졌죠.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심을 가지는 순간 오히려 튀는 사람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건 정치가 ‘우리 삶의 일상’이 아니라 ‘멀고 특수한 무언가’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 같았어요.
4. 참여하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구조
사실 저도 여러 번 도전했어요. 청년 정책 제안 공모전에 지원해봤고, 온라인 청원도 써봤고, 주민참여예산 회의에도 가봤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느낀 건 ‘정책 시스템’이 우리를 잘 받아주지 못한다는 점이었어요.
예산은 이미 정해져 있고, 제안한 내용은 검토만 하겠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몇 시간씩 고민해서 작성한 제안서가 접수되긴 했지만, 그 이후로 연락이 온 적은 거의 없었어요.
또, 정치인을 만나고 싶어도 청년의 위치에선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요. 소통 창구는 복잡하고, 회의는 평일 오전에 열리고, 발표자 선정 기준도 불투명해요. 그러다 보니 ‘정치 참여’는 시도해볼수록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5. 정치 불신은 무관심이 아니라 ‘반복된 학습’
사실 많은 청년들이 처음부터 정치에 냉소적인 건 아니에요. 오히려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에 나가 처음 몇 년은 꽤 적극적인 경우도 많아요. 나도 한때는 그랬고요.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건 무관심이 아니라, 반복된 경험을 통해 학습된 감정이에요.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감정은 점차 집단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요. ‘정치 혐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정치 뉴스는 피하게 되고, 투표율은 떨어지게 되죠. 무관심이 아니라, 무력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거예요.
6. 정치가 우리를 설득하려면
결국 정치는 말이 아닌 행동과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년들에게 다시 다가가고 싶다면, 단순히 ‘청년’이라는 키워드를 남용하기보다는, 정말로 청년들의 삶의 언어로 다가와야 해요.
그건 거창한 정책보다, 작은 일상에서 시작될 수 있어요. 청년이 참여할 수 있는 회의를 오후 2시 대신 저녁 7시에 열거나, 지역 커뮤니티에서 청년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식으로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 번 말했는데 반영되지 않았다’는 경험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한번의 실망이 열 사람의 무관심을 낳는다는 걸, 정치권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결론: 냉소를 넘는 작은 시작
지금도 저는 정치 뉴스를 보면서 한숨이 나올 때가 많아요. 하지만 동시에, 한 가지는 분명히 느끼고 있어요. 우리가 정치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다’는 사실이요.
우리는 월세를 내고, 청년 지원금을 신청하고,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받으며, 이미 정치와 매일 만납니다. 다만 그 연결고리가 너무 희미하기에, 우리는 그걸 정치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거예요.
냉소는 저항이지만, 동시에 탈출이에요. 저는 이제 조금씩 다시 돌아오고 싶어요. 그 이유는 간단해요. 바꾸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죠.
📌 다음 편 예고
👉 9편. 지방 소멸 시대,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지역 격차와 청년 유출, 지방소멸이 남긴 사회적 단층을 들여다봅니다.
※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찰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