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 출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며 자연스럽게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당시에는 누구나 그렇듯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것'이 하나의 관문처럼 여겨졌고, 나 또한 그 흐름에 올라탄 셈이다.
그런데 어느 날, 뉴스에서 '지방소멸 위험 지역'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 안에는 내가 자란 동네, 친구들과 뛰놀던 운동장, 부모님이 여전히 사시는 그 마을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1. 지방이 사라진다 – 데이터로 보는 현실
행정안전부가 매년 발표하는 "소멸위험지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229개 시군구 중 절반이 넘는 지역이 소멸위험 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 대비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로 계산되는데, 이 수치가 0.5 미만이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도 전남 고흥, 경북 의성, 강원 인제처럼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지역은 이미 소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반면, 서울과 수도권은 여전히 인구가 몰리고 있다. 나처럼 대학을 서울로 온 지방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지방은 점점 텅 비어가고 있는 셈이다.
2. 왜 청년들은 떠나는가?
“지방에도 일자리 많아, 왜 굳이 서울 가?”라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지만, 정작 우리가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은 다르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지방의 국립대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취업을 준비했지만, 1년 넘게 ‘내 전공과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다시 수도권으로 향했고, 지금은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서울에선 최소한 기회는 많으니까.”
문제는 일자리 뿐만이 아니다. 문화 시설, 교통, 청년 정책의 접근성 등도 청년 유출의 큰 원인이다. 작은 도시에서는 늦은 시간에 문 여는 카페도 드물고, 영화관은 차로 한참 가야 한다. 청년 정책이 있다고 해도 정보를 찾기 어렵고, 참여 방법도 복잡한 경우가 많다.
3. 고향에 대한 애정과 현실의 괴리
사실 지방 청년들이 고향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애틋하다. 매번 명절마다 내려갈 때면 동네가 점점 조용해지는 게 눈에 띈다. 초등학교 후배 수는 줄고, 마을버스도 줄고, 편의점조차 문을 닫는다.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청년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다. 결혼, 출산, 주거, 일자리 모든 게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가르며 존재하고, 결국 선택은 하나다. 남느냐, 떠나느냐. 그리고 대부분은 떠난다.
4. 지방 청년 정책, 왜 실효성이 떨어질까?
최근 몇 년 사이 ‘청년을 위한 귀향 지원 정책’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예컨대 경상북도의 '청년 U턴 지원사업', 전라남도의 '청년마을 프로젝트' 같은 것들이다. 겉으로 보면 꽤 인상적인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 이유는 뭘까? 몇 가지가 있다.
- 일자리의 질: 단기 공공일자리 위주로 구성돼 장기적인 커리어 설계가 어렵다.
- 정착 지원 부족: 주거 지원이나 커뮤니티 형성이 어려워 '잠깐 있다 나가는' 구조가 된다.
- 청년 의견 반영 부족: 정책 설계에 실제 지방 청년이 참여하지 않아 현실과 괴리된 경우가 많다.
결국 청년들이 원하는 건 ‘귀향 장려금’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5. 지역이 사라지면, 무엇이 사라지는가?
지역이 소멸된다는 건 단순히 인구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지역이 지닌 문화, 언어, 역사, 공동체의 감정이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을 제주의 사투리, 해녀 문화, 마을 축제의 쇠퇴에서 느꼈다.
어릴 적 봄마다 열렸던 마을 체육대회는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어른들이 차려주시던 떡과 국수, 운동장 끝에 피어있던 노란 유채꽃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사람도 적어졌다.
이런 기억들이 사라진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지방이 사라지면, 한국 사회는 그만큼 다채로움을 잃게 될 것이다.
결론: 지방소멸을 막는 것은 결국 ‘사람’
지방을 살리는 건 대단한 정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중요한 건 청년들이 ‘여기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환경이다.
그 첫걸음은 청년이 스스로 지역을 기획하고 만들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나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 다음 편 예고
👉 10편. 교육 공화국, 어디로 가고 있는가?
수능, 사교육, AI 튜터 시대의 교육 불평등과 변화된 학습 생태계를 조명합니다.
※ 본 글은 필자의 직접 경험과 지방 청년들의 현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